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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0. 17:44 - 랏샤

로스트아크내 소설

1. 바다의 노래 -해링턴

어둠이 일렁였다.
밤바다의 물결은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낼 정도로 세찼고, 
귓가가 시릴 정도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빠각, 빠각 소리를 내는 해골들은 칼을 쥔 채 턱을 까닥였다.
눈앞에 있는 자를 막아야 한다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려 했지만, 
이미 앞서 나선 이들은 산산조각이 난 채
갑판에 뼛가루를 흩뿌린 상황 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고래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거대한 갑판을 넘어, 
배의 중심에 세워진 돛대를 향하고 있었다.
가장 위에 매달려 있던 해골들이 
붉은 안광을 번쩍이며 칼을 치켜든다.
상대가 이제껏 이 배 '하얀재'에 접근한 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갑판 아래의 문이 열리며 해골들이 기어 오른다.
수백 년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며 저주에 붙잡혔던 해골들은,
증오 어린 숨결을 토해내며 침입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칼을 어깨에 걸친 채,
허리춤에 걸린 총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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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해골들은 돛이나 용골을 스멀스멀 기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바다에 첨벙 하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남자는 해골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순식간에 세 마리의 해골들을 부숴 던져버리고 있었다.
주변을 훑던 그의 눈이, 이윽고 확신을 지닌다.
동시에 달려나가기 시작한 남자의 모습에,
해골들은 다급히 칼을 휘둘러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 해골의 눈앞에는 검은 총구가 들이밀어졌고,
굉음과 함께 해골이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뼛가루가 흩뿌려졌다.
해골들을 뚫고  일직선으로 달려나간 남자는,
이윽고 선장실의 문 손잡이를 잡아 강하게 비틀었다.
퀴퀴한 악취가 뿜어지며,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사슬로 칭칭 감겨 있는 해골이 있었다.
선장의 제복 상의만을 어깨에 걸친 채,
온몸이 선장실 어디선가뻗어져 나온ㅇ 사슬에 휘감긴 해골은,
하얀 재처럼 말라붙은 두개골을 들어 남자를 노려보았다.

"여기까지... 온 자는 처음이로군..."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해를 떠돌았던 배
'하얀 재'의 선장 비오시카는,
일렁거리는 붉은 안광을 들어 남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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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네가... 바라는 것은... 없다..."

영원히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
비오시카는 남자의 치기에 헛웃음이 일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하얀 재'를 쓰러뜨렸음을 알리고 싶었거나,
혹은 그 안에 있을 법한 보물을 노리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문을 닫은 채 가만히 선장실을 둘러보며,
뼛가루로 엉망이 된 모자를 벗어 툭툭 털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비오시카는 저도 모르게 화가 일었다.

"무엇을... 원하나..."
"너."

비오시카의 눈빛에 잔떨림이 일었다.
툭툭 턴 모자를 쓴 남자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아이처럼, 장난기가 가득 담긴 미소였다.

"함께 모험을 하자. 비오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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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이프 오브 체더 -라세이

"하늘을 내려다 볼 수 있다니, 너무 예쁘다!"
유디아의 소금사막 한가운데에서 치맛자락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짓는 저 레이디의 이름은 루네디. 나는 그녀의 기사로,
몇 시간 전 우리는 루테란에서 이곳까지 말을 타고 달려왔다.
"이것 봐, 체더! 지렁이가 소금을 먹어!"
유랑민 캠프에 말을 맡기고 소금사막을 걷던 나는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레이디 루네디가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었는데, 시선을 쫓아가 보니
근처에 웜 한 마리가 나타나 그녀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외쳤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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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의 웜 사건 이후 나는 유디아를 벗어나 루테란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지만
레이디 루네디는 유랑민 캠프에서 말을 되찾아 그 길로 항구까지 달려갔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본격적으로 배를 구해 항해를 시작했다.
"세상에 어쩜... 바닷물에 비친 햇빛 좀 봐. 보석 같아."
나는 그녀의 충직한 기사로서 열심히 노를 저으며 말했다.
바다에 손을 담그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고. 하지만 레이디 루네디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아니, 새겨듣지 않았다.
"꺄하하, 이것 봐, 체더! 물고기가 내 손을 따라오고 있어! 귀여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손끝을 이리저리 맴도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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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보니 어딘지 모를 해변가였다. 다행히 레이디 루네디와 함께였지만
좀처럼 그녀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용서를 구한 뒤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눈을 뜬 레이디 루네디는 겁에 질린 기색도 없이 두 눈을 반짝이며
우리가 쓰러져 있던 해변가를 둘러보았다.
"맨발로 걸어 보고 싶을 만큼 부드러운 모래야."
나는 그녀가 신발을 벗기 전에 달려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모래 속에는 뾰족한 나뭇가지나 돌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디 루네디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녀가 실망한 건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섬을 벗어나야 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앉을 만한 자리를 확보해 준 후
뗏목을 만들 재료를 구해 오겠다고 했다.
"이것 봐, 체더! 여기에..."
숲이 있는 쪽으로 향하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습관적으로 외쳤다.
"아가씨! 위험합...!"
그러나 레이디 루네디의 손바닥 위에 올라간 자그마한 난쟁이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뒷말을 삼켰다.
"안녕, 코코모!"
잎사귀로 만든 옷을 입은 난쟁이가 두팔을 벌려 내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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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들의 도움으로 섬을 탈출한 우리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가
어느 해적의 도움으로 얼음의 땅 슈사이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육지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감격했으나 레이디 루네디는
어딘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아가씨, 슈고 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구해 오겠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 때문이리라 생각한 나는 남은 돈을 뒤졌다.
"체더, 우리는 빈털터리야."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렇다. 난파된 이후 우리는 가진 것이라곤
몸밖에 없는 처지였다. 레이디 루네디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나는 결단을 내렸다.
"슈고 가죽으로 만든 따뜻한 겉옷은 물론, 루테란으로 갈 수 있는 뱃삯과
여행에 필요한 음식들을 구해 오겠습니다."
비장한 나의 목소리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렇게 잘 웃던 레이디 루네디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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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기사였기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얼어붙은 이 땅의 추위에도
금방 적응했다. 먹는 것이 조금 부실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겐 레이디 루네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가진 것이 몸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였다.
나는 기사의 명예를 버리고, 몸을 팔아 레이디 루네디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건네주었다. 남루한 행색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검을 마지막으로 건넸을 때,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체더, 당신을 사러 오겠어"
레이디 루네디가 탄 배가 항구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손가락을 펴자 그녀가 아끼던 나무반지가 있었다. 반지 안쪽에는
레이디 루네디가 태어난 날이 각인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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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흘렀을까, 기억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돌아오지 않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분노, 슬픔보다는 그녀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토록 기다린 순간,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레이디 루네디는 내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건넸던 나의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지면에 검 끝을 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아가씨, 저는..."
"체더, 당신의 명예는 나한테 있어. 명예를 원한다면 무릎을 꿇어."
그 말에 어찌 반박할 수 있을까... 나는 무릎을 꿇었고, 레이디 루네디는
두 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려 기사임명식의 시작을 알렷다.
그 후, 나는 나무반지를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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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이어에서 노예의 삶을 끝내고 다시 루테란으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레이디 루네디의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그대로 여행길에 오른 우리는
신비로운 로헨델, 붉은 사막의 아르데타인, 예술의 나라 플레체 등
온 대륙을 돌아다녔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체더."
더 이상 돌아볼 곳도 없을 때쯤 애니츠에서 만두를 먹던 그녀가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녀의 말을 따랐다.
루테란으로  돌아온 나는 동부에 집을 구해 작은 과수원을 시작했다.
"후훗, 이것 봐, 체더! 사과가 잘 익어서 루비처럼 빛이 나!"
한창 수확철이라 사과를 따고 있던 나는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는 레이디 루네디...아니...
"은근슬쩍 먹으려고 하지 마,루네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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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말론의 일기 -아말론

젠장. 또 실패했다. 뭐가 문제였지?

이 빌어먹을 놈의 귀족들은, 잘못된 걸 먹으면 혀라도 떨어져 나가는 줄 아는지
펄쩍펄쩍 뛰며 하를 내기 일쑤다.
거 요리사가 요리를 좀 시도해 보려고 하면 실패도 하고,
가끔씩 이상한 맛도 좀 나는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일단 레시피는 적어두자.

뼈를 제거한 생선 2장(소금이랑 후추)
버터 반 개
양파 반 쪽(취향에 따라 하나 넣어도 된다. 이 빌어먹을 귀족 놈은 양파가 싫단다)
월계수 잎 2장
자고라스 청정수 1컵
화이트 와인 적당히(어차피 내가 다 마신다)
로헨델 마나꽃잎 3장

아마도 로헨델이다
로헨델에서 가져왔던 마나꽃을 으깨서  집어넣은 건 실수였던 모양이다.
그냥 먹었을 때는 제법 달달한 맛이 돌길래 설탕을 대신해볼 생각으로 섞어봤던 건데...
난 설마 그게 변신 물약에 사용되는 건지는 몰랐지.
귀족 나으리가 갑자기 개구리로 변해버린 탓에  다들 길길이 날뛰었고,
쓸데없이 잘 차려 입은 병사들이 쫓아오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 몸은 그 로헨델에서도 탈출한 몸이시다.
미리 뚫어놓은 개구멍을 요긴히 사용했다. 로브가 더러워진 건 좀 아깝다.
가끔 생각이 드는데, 이 정도 맛있는 요리를 먹는 거면 개구리가 되도 괜찮지 않나?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고작 반 년 정도  변해 있는 건데 말이지.

아무튼 이걸로 또 한참은 숨어 다녀야 할 것 같다.

뭐 잘 된 일이다.
어차피 조만간 유디아에 들러서 태양소금이란 걸 구경해볼 생각도 있었고...
루테란도 섭정이란 놈이 날뛰는 통에  들어가질 못했었는데, 조만간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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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도 도망 다니느라 펜을 잡을 일이 없어서 겨우 이제야 일기를 쓴다.
이런 젠장할.

유디아에서 만난 주술사 할멈이 태양소금을 구해다 준 덕에,
제법 재미있는 요리들을 실험할 여유가 생겼다.

뭉카 고기는 소금구이로만 해도 제법 감칠맛이 돈다.
다음엔 좀 많이 들여다가 스테이크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적어놔야지.

뭉카고기 300g
태양소금 한 줌
소금나무 열매 과즙 2개 분량
디오리카 기름 한 스푼
이 정도로만 만들어 놓아도 제법 먹을 맛이 난다.
다들 허기졌는지 만들자마자 허겁지겁 먹어대서 맛도 물어볼 틈이 없었다.
빌어먹을 유랑민 놈들. 평소에 좀 잘 처먹고 다닐 것이지.
50인분을 만드느라 오랜만에 팔에 근육통이 왔다.
그러고 루테란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이 빌어먹을 루테란 깍쟁이 놈들이 재료를 찾겠다는 내 의지를 자꾸 괴롭힌다.
섭정에게 바친답시고 사람들을 굶겨대지 않나...
동부로 넘어가니 다들 가관이다. 원래는 인심 좋은 곳이었다고.
근처에서 좋은 호박을 봐 뒀다. 일단 디오리카도 조금 슬쩍해 뒀으니,
이걸로 스프라도 하나 만들어 봐야지.

일단 오늘은 이만 잔다. 더럽게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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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르데타인 기담집 -오스턴

"게빈... 만족해?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들어?"

나는 신체 개조에 중독되어 전신을 개조하는, 친구 게빈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질문에 게빈은 무언가 말하려다, 꾹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게빈은 얼마 안 가 행방이 묘연해졌고, 나는 그가 토트리치의 변두리,
버려진 연구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급히 그곳을 찾아갔다.
삐걱거리는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쇠 비린내와 자욱한 먼지가
일어나 속이 울렁거렸다. 스위치는 이미 전력이 끊겨 있어, 불은 없었다.

"오... 오... 오스터..."

기계음이 들렸다. 나는 그 섬뜩한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먼지와 함께 씌워진 천이 보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쫓아왔던 그 소리는,
테이블 위의 출력 장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플라스크 위에는, 떠다니는 뇌가 있었다.
나의 이름만을 되뇌고 있는 뇌를 바라보다, 나는 그곳을 박차고 나왔ㄷ사.
이후, 나는 게빈이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소리만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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